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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싶고 글도 써야겠고

《최선의 고통》“지금 행복하시잖아요, 그쵸?”

by naraola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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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블룸 지음, 김태훈 옮김, 《최선의 고통》, 알에이치코리아, 2022

 

“지금 행복하시잖아요, 그쵸?”

예능 프로그램에서 결혼 생활의 사소한 푸념을 털어놓는 남자 배우 혹은 남자 가수 혹은 남자 코미디언에게(어쩐 일인지 이런 질문을 받는 쪽은 대체로 남자니까) 사회자가 능청스럽게 묻는다. 그러면 기세 좋게 말을 이어가던 그 사람은 갑자기 말을 버벅대며 겨우(가끔은 ‘겨우’를 연기하는 것 같기도 한데) 대답한다. “그, 그럼요. 아하하” 말하는 사람은 바뀌는데 대답이나 반응은 하나 같이 똑같고, 사람들도 분명 여러 번 보았을 그 장면을 보고 또 똑같이 웃는다.

 

하지만 《최선의 고통》을 읽은 남자 배우 혹은 남자 가수 혹은 남자 코미디언이라면 남들과 다르게, 보다 똑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다. “지금 말씀하신 ‘행복’은 ‘경험적 행복’을 의미하나요, 아니면 ‘삶에 대한 만족도’를 의미하나요?” 물론 이 발언이 스튜디오에 몰고 올 냉담한 바람 역시 그 사람의 몫이 되겠지만. 조금 더 박식해 보이고 싶다면 “‘헤도니아’의 측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유데모니아’의 측면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고 되물어 볼 수도 있게 된다.

 

이 용어들은 모두 이 책이 설명하는 주요 개념들이다. 저자는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말을 빌려 ‘행복’이라는 모호한 단어는 바로 지금의 감정을 가리키거나(경험적 행복), 삶의 커다란 부분에 대한 평가(삶에 대한 만족도)를 가리키는 등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한다. 책을 끝까지 읽었다면 이들이 헤도니아(쾌락)과 유데모니아(의미)라는 고전적인 개념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으므로 모두를 성취하는 일도 가능하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볼 수 있다. “지금 행복하잖아, 그치?” 만약 그 대답이 “음, 뭐, 해, 행복하지…”라면 이 책을 읽으며 내 삶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자가 진단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앞서 말한 ‘삶에 대한 만족도’와 ‘의미’가 결여되어 길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 원인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직장에서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가 하는 고민은 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숙고해볼 만한 문제이다. 도대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시라도 빨리 나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 좋다. 단, 떠날 것을 결정하기 전에 이 책 《최선의 고통》을 읽으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앞서 인용한 부분에서도 언급된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을 읽는 것 역시 도움이 될지 모른다. 불쉿 잡이란 그저 일을 위한 일이 되어버려 일하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노동에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허위와 목적 없음’을 핵심으로 하는 일을 말한다. 맞다. 그 Bullshit이다. 나를 위한 일도 아니고, 팀을 위한 일도 아니고, 심지어 회사의 이윤을 위한 일도 아닌 의미 없는 일.

 

그렇다면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

 

이 물음은 무척 난해하지만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답안을 얻을 수 있다. 힌트는 책의 제목에 있다.

 

험준한 산을 등반하는 일은 가혹한 추위, 탈진, 설맹증, 고산병, 공포 등과 같은 고통을 동반하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산악인들은 산에 오른다. 왜일까. 등반은 육체적 고통을 불러오므로 감각적 쾌락을 주지도 못하고, 등반 중 동료들과 다툼이나 논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회적 유대에서 얻는 쾌락의 효과 역시 미미하다. 명성을 얻거나 자신을 알기 위한 도구라고 하기에도 명예를 얻기 위한 다른 길은 정상 탈환 말고도 많이 있다.

 

저자는 등반이 ‘의미 있는 목표’이기 때문에 도전한다고 썼다. 마찬가지로 군에 자원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국가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 의미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입대한다고 쓴다. 부모가 되는 일 역시 아이가 태어나면 수면 시간이 줄고 하고 싶던 취미도 미뤄둬야 하므로 당장의 경험적 행복도는 낮아질 수 있겠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삶이 더 의미 있기 때문에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본다. 절대적인 기준에서 삶의 의미를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조건은 ‘의미 있는 목표’를 가지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일련의 사건을 거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난은 항상 동반된다.

 

이 책은 행복을 찾아주는 바이블은 아니다. 다만 행복을 찾아 나선 이들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을 상기시킨다.

 

대체로 번역서는 국내 저자의 도서에 비해 읽는데 조금 더 에너지가 소모된다. 이 사실은 이 책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책을 읽는 내내 번역하기가 몹시 까다로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고, 책 자체의 분량도 적지 않은 데다가 내용마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번역자였다면 과연 이 책을 무사히 번역해낼 수 있었을까. 내용에 대한 완벽한 이해, 수많은 자료 검토, 신중한 언어 선택, 생소한 개념을 정의하는 과감한 조어까지 해내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었음은 틀림없다. 한편, 조금 더 세심하게 다듬었다면 이 책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283쪽 첫 번째 줄 “그렇다면 고난과 끈기의 연관성을 있을까?”와 같은 문장은 단순히 조사의 오타인지, 서술어 부분에 누락된 단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 같은 독자는 잠시 길을 잃고 만다. 운 나쁘게도 이 문장은 이 챕터의 첫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서평단 모집 글을 보고 신청했고, {알에이치코리아출판사에서 흔쾌히 책을 보내주셔서 부지런히 읽고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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