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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싶고 글도 써야겠고

《브레인투어》메타버스 튜토리얼

by naraola 2022.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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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균 지음, 《브레인투어》, 이야기나무, 2022

 

‘초월’을 의미하는 ‘meta’와 ‘우주·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metaverse)는 2021년 영국 콜린스 사전이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 후보에 올랐다. NFT(대체불가토큰)에 밀려 안타깝게도 최종 선정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2021년 이후 끊임없이 인구에 오르내리며 날로 유명세를 더해가는 중이다.

 

이렇게 많이 듣고 말하는데 도대체 메타버스란 무엇일까? 지난 대선에서 누군가 타고 다녔다는 매주 타는 버스를 말하는 걸까?

 

나처럼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었고 마침 지금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이 궁금증을 해소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우선 메타버스와 관련한 아래 영상을 보면 도움이 되겠다.     

 

짧은 영상(1분 22초): 이야기나무 공식 채널 “김상균 교수님과 함께하는 메타버스 Q&A”

https://youtu.be/aC0seU0ieck

 

긴 영상(16분 50초): 김상균 교수 세바시 “우리는 메타버스에서 일곱 개의 학교에 다닌다”

https://youtu.be/Pvr9FnwPufg

 

메타버스는 나를 대신한 아바타가 뛰노는 가상의 세계를 의미하는 듯하다. 다루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그 뜻이 바뀔 정도로 아직까지 뚜렷하게 정의 내려진 것은 없다. 다만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사회적, 경제적인 활동을 가상 세계까지 확장한다는 개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브레인투어》 서평을 메타버스라는 생소한 단어로 시작한 이유는 이 단편소설집이 무려 '메타버스' 단편소설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가. 저자인 김상균 교수는 인지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로 현재 《한겨레신문》에 ‘김상균의 메타버스’라는 칼럼을 연재하는 등 메타버스 전문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이 소설집은 메타버스 기술이 발전한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당면할지도 모르는 모습을 상상하여 쓴 것이다.

 

총 17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분량도 많지 않기 때문에 지루한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손쉽게 읽을 수 있다. 빠른 전개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흠칫 소름이 돋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 이야기를 단순히 허구의 이야기로 볼 수 있을까? 이건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겪게 될 문제들은 아닐까?

 

예를 들면 첫 번째로 실린 <아무도 없었다>가 그러하다. 이 이야기는 신축 아파트의 화단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지금이라면 화단 바로 앞집, 1층에 사는 사람이 목격하고도 남았을 사건이지만 이야기에 나오는 신축 아파트는 모든 입주민이 거실 창을 증강현실 창으로 설치해 놓은 바람에 목격자가 없다. 이 사건의 현장 바로 앞집에 살고 있는 형철과 미선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각, 두 사람은 거실 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때 거실 창에는 강릉 앞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형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 일은 이후에 두 사람을 찾아올 비극과 맞닿아 있었다.

 

증강현실 창에 가로막혀 바로 건너편에서 사람이 죽임 당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니. 증강현실 창이라는 것이 실재하지는 않지만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술이 주는 작은 편의를 위해 더 가치 있게 다루어져야 할 무언가가 소외되거나 외면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경험이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의 표제작 이기도 한 <브레인투어>는 세 번째로 실린 작품이다. 골수팬 말고는 찾아주는 이 없는 아이돌 시우는 소속사 이 대표와 주식회사 브레인투어의 정 실장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시우가 잠든 사이에 다른 사람이 머릿속으로 접속하여 시우의 기억을 여행하게 한다는 ‘브레인투어’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해 보자는 이 대표와 이 상황이 못내 찜찜한 시우의 대립이 팽팽하다. 결국 ‘메모리 커튼’으로 시우가 원하는 일부 기억만큼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두는 조건으로 브레인투어 계약이 성립된다. 예상한대로 많은 팬이 티켓을 구매해주어 시우의 브레인투어는 성공리에 마친 듯 보였다. 하지만 메모리 커튼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이 이야기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조엘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자 결심하고, 기억을 지워준다는 라쿠나 클리닉을 찾아간다. 라쿠나 클리닉은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물건들을 봤을 때 뇌가 반응하는 구역을 스캔하는 방식으로 뇌 지도를 만든 후 조엘이 잠든 사이 이 지도에 표시된 기억을 지운다. 하지만 잠든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지우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고, 자신의 기억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클레멘타인을 기억 속에 숨기려고 고군분투한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

놀라운 점은 이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이런 방법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것. 그렇다면 <브레인투어>는 어떨까? 물론 뇌 속에 저장된 기억을 지우는 일과 그 기억을 다른 사람이 영상처럼 보는 일은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독자는 이야기마다 ‘과연 나라면 내 아이돌의 브레인투어 티켓을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스스로 하게 된다. 이 책의 이야기들이 모두 ‘한 달 뒤’, ‘세 달 뒤’ 하는 방식으로 시점을 점프하는 점 역시 이러한 질문을 돕는다. 인물의 감정이나 장면의 분위기를 상세히 묘사하기보다는 사건 위주로 서술하기 때문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게 만든다. 덕분에 독자는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 끝나더라도 어떤 일이 더 일어날지 스스로 질문해보게 되는 것이다.

 

때로 이 질문들은 철학적인 사유나 윤리적인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마지막에 실린 <증강현실 콩깍지>는 배우자의 얼굴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셀럽의 얼굴로 보이게 하는 증강현실 렌즈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비스 비용을 내고 이 렌즈를 끼기만 하면 배우자의 얼굴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얼굴이 실제보다 멋있거나 예쁘게 보인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다른 사람(내가 선택할 것이니 아마도 내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의 얼굴로 보이게 한다니!

 

생각해보면 사랑에 빠져서 씌는 콩깍지와 다를 게 무엇인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고, 상대방의 얼굴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일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그럼 당장 이 서비스를 계약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지만 배우자의 얼굴 대신 셀럽의 얼굴을 보며 사랑을 느낀다면, 그 감정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이 사람의 얼굴 하나쯤은 다른 사람이 되더라도 내 사랑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것일까? 한편, 배우자의 얼굴 대신에 보이는 셀럽은 물론 초상권에 대한 대가를 받았겠지만 정말 그걸로 괜찮을까?

 

현실 세계를 초월한 또 다른 가상 세계는 이처럼 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또 하나의 universe를 갖는 일은 이토록 쉽지 않다. 바꿔말하면 우리에게 던져진 모든 질문에 성실히 고민하고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또 하나의 세상을 완전히 가지는 것이다. 자신의 universe를 가상의 세계까지 확장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책 《브레인투어》를 튜토리얼 삼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래서, 나는 배우자를 소지섭으로 보이게 하는 증강현실 렌즈를 살까?

마트에 갈 때, 산책할 때, 주말에 소파에서 뒹굴거릴 때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소지섭으로 보인다고? 솔깃한데?

하지만 나는 사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우선, 매우 단순한 이유인데 나는 렌즈가 몹시 불편한 사람이다. 일 년을 넘게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온종일, 일 년 내내, 평생 낄 수 있는 렌즈가 아닌 이상 이 불편한 렌즈를 빼두는 시간이 있을 텐데 그럼 그 갭은 어떡할 건데.

무엇보다, 그 사람은 소지섭이 아니고 소지섭은 그 사람이 아니다.

(애써 쿨한 척)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니

 

(서평단 모집 글을 보고 신청했고, {이야기나무} 출판사에서 흔쾌히 책을 보내주셔서 부지런히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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