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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너무 맛있는데 다이어트는 해야겠고

러닝 할 때 듣는 콘텐츠 방랑기

by naraola 2022.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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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요 속의 러닝; 몸과 마음의 사색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오직 달릴 때와 멈출 때를 알려주는 알람 소리뿐.

처음부터 아무것도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운동이니까, 피트니스센터에 가면 으레 그렇듯 신나는 음악을 들어야지 했다가 낭패를 보았다.

둠칫둠칫, 머, 멈출 수가 없어…!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달릴 때 호흡과 페이스를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 그런데다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곧잘 오버페이스를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흥부자임) 오버페이스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버페이스를 하는 바람에 그날 계획한 운동을 끝까지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몹시 굴욕적이었다.

고요 속의 러닝은 사실 무척 많은 영감을 준다. 이미 러닝과 관련한 많은 글에서 증언이 이어지고 있듯 달리기는 마치 명상과 같은 효과가 있다. 달리는 동안 생각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특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군더더기가 떨어져 나가고, 또 이 생각과 저 생각은 합쳐지면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물론 그 생각이라는 것이, 힘든데? 힘들잖아?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달려야겠지? 여기서 멈추면 후회하겠지? 하고 오늘 달리기의 성공 여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원 없이 의심하면서 끝까지 달리는 것이다. 그 의심들이 사실은 모두 기우에 불과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2. VIBE 추천 플레이리스트

몇 년째 애용하는 VIBE(네이버뮤직)이 비록 스트리밍 앱의 최약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내 눈에는 장점이 무척 많은 앱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플레이리스트 기능. 아, 이 기능은 다른 앱에도 있지? 하핫.

충성충성


어쨌든 이번에 다시 러닝을 시작하면서는 어디 한 번 신나는 음악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동안 세파에 시달리느라 흥이 줄어 신나는 리듬에도 어깨춤을 추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자신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오버페이스라고 할 것이 없었다. 2월 나의 첫 프로그램은 고작 2분 달리고 1분 걷는 것이었으니까.

나의 러닝 프로그램은 아래 링크에서..
https://blognaraola.tistory.com/14?category=1018728

 

나의 러닝 프로그램

이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의 러닝 코치는 《초보 러너를 위한 쉬운 마라톤》이라는 책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품절되었고 가까운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blognaraola.tistory.com


그래도 어쩐지 아는 노래에 흥이 안 날 자신은 없어서 내가 모르는 신나는 노래를 잔뜩 틀어주는 플레이리스트를 골랐다. 예를 들어 ‘월요병을 싹 날려버릴 노래: 63분’ 뭐 이런 느낌.

결과적으로 신나는 음악은 신이 나는 대로 좋았다. 힘들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이 흥이 차오른다. 가끔 ‘라운지 대세 팝’ 이런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 건조한 내 삶에 힙함을 한 스푼 추가한 듯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으쓱하기도 한다.


3. 클래식-라흐마니노프

VIBE 플레이리스트는 대부분 내가 모르는 곡뿐이다. 어차피 흥얼거릴 수 없다면 흥얼거릴 수 없는 다른 장르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들어본 클래식, 그중에서도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 in VIBE


주변에 잘 찾아보면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인데도 아주 저렴하거나 심지어 무료인 공연이 왕왕 있는데 라흐마니노프는 그런 공연을 찾아갔다가 처음 듣게 되었다. 지역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공연으로 방송국 소속 아나운서인 사회자가 무려 드레스를 입고 곡 설명을 해주는 아주 격조 높은 연주회였다.

라흐마니노프는 선율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내가 그날 공연에서 가장 좋았던 곡도 선율이 무척 아름다웠는데 드레스를 입은 사회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 곡은 팝송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에도 삽입되었다고 한다. 원곡은 <피아노 협주곡 2번 다단조 작품 18 중 2악장>이다. 이 노래를 만든 팝가수 Eric Carmen은 그 외에도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All by Myself>라는 곡도 라흐마니노프 멜로디에 기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클래식과 낯 가리는 나이기에 러닝 할 때 듣는 클래식은 사색으로 통하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한 곡 전체를 들을 줄 모르기 때문에 낯선 부분에서는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부유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다가 익숙한 멜로디가 나오고, 아, 하고 순간 다시 땅으로 되돌아오는 그 기분. 마치 시공간을 넘어선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4. 팟캐스트; 이런 흥미진진한 내용을 운동하면서 동시에 즐길 수 있다니

요즘 러닝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콘텐츠는 단연 팟캐스트이다. 요일별로 스케줄도 있는데, 월, 화요일에는 <NHK Radio News>를, 수, 목, 금요일에는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송출하는 <책읽아웃>을 듣는다.

NHK Radio News


<NHK Radio News>

밥을 먹으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 행복한(?) 직업인임에도 불구하고 공부할 시간이 마땅히 나지 않는다. 물론 매일 일본어로 된 텍스트를 읽거나 오디오를 듣기는 하지만 이걸 번역할 대상으로 보는 것과 그 자체를 공부할 대상으로 보는 것은 미묘하게 다르다. 써 놓고 보니 어쩐지 핑계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고.

그래서 러닝 하는 동안 듣는 NHK 뉴스가 무척이나 공부가 된다, 라는 결론이라면 아주 행복하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더라. 당장 바람만 불어도 오디오의 반쯤은 바람 소리에 묻혀 날아가 버리고, 달리기 막바지가 되면 잘 들리는 소리마저도 의식의 아득한 저편으로 멀어져 가는 것을. 그런데도 계속 듣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요즘 저 멀리 떨어진 저 나라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저 사람들은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 엿보는 일은 직업적인 필요성 이상으로 꽤 흥미롭다. 이런 흥미진진한 일을 운동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책읽아웃


<책읽아웃>

꼭 일 때문이 아니라도 무언가를 읽는 행위를 좋아하는 나는 각종 온라인 서점이나 일간지의 뉴스레터를 통해서 책 소식을 듣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송출하는 책읽아웃은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책 소식 채널이다. 지면으로나 모니터 화면으로나 정적이기 짝이 없는 작가와 책이 책읽아웃에서는 웃고 떠들며 생동한다. 그리고 책 이야기와 더불어 책에 담겨 있는 세상의 트렌드를 전해주기도 한다.

흔히 패션계가 트렌드의 최전선이라고 말하는데, 그 트렌드를 세상과 공유하기 위한 텍스트를 묶어 파는 출판계 역시 트렌디함을 따지자면 둘째로는 서러울 정도이다. 요즘 세상에 책은 무슨 책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지만 어쨌든 세상에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기록하는 가장 정교하고 확실한 매체는 텍스트이고 그 외 매체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텍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버버리의 클래식 체크 모노그램이 세상의 변화에 맞춰 무한 변신하며 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아마 책은 가장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매체로서 그 영향력을 지속할 것이다.

책읽아웃은 디제이의 라디오 방송 느낌이다. 다만 노래 대신 책이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랄까. 요일마다 디제이와 주제와 책이 다르므로 다양한 책을, 다양한 시선으로 소개받을 수 있다. 반복해서 듣다 보면 굳이 소개된 책을 읽지 않더라도 교양이 살찌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런 흥미진진한 일을 운동하면서 동시에 할 수 있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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