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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로 상상의 나래_일본어

한국 드라마‧영화, 일본에 가면 이렇게 부른다고?

by naraola 2024.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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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이요? 제가요?

 

오늘 갑자기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생각났어요.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 제목을 일본 친구들에게 말했던 순간이 떠올랐죠.

행방불명이 부분을 뜻 그대로 行方不明라고 말했더니 빵 터지지 뭐예요?

범죄 영화냐면서 말이죠.

실제로 이 영화의 원제는 千尋神隠입니다.

센과 치히로의까지는 직역 그대로고요. 문제는 행방불명에 해당하는 神隠인데요.

(‘카미 카쿠시라고 읽습니다.)

神隠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마치 신 혹은 귀신()이 숨기기라도() 한 것 같다는 말이죠.

 

그러고 보니 우리도 다른 나라에 개봉한 한국 영화 제목 듣고 빵 터질 때 있잖아요.

그래서 웃으려고 한 번 찾아봤습니다.

일본에 공개된 우리나라 영화, 드라마 제목은 어떻게 번역되었을까요?

제목들을 죽 보다 보니 대략 세 가지 타입으로 나뉘었습니다.

 

첫 번째, 한국어 제목을 최대한 직역한 경우

최근 공개되는 드라마영화는 대체로 여기에 해당했습니다.

가령 ‘눈물의 여왕’은 그대로 ‘눈물의 여왕(涙の女王)’입니다.

선재 업고 튀어ソンジェ背負って인데요.

선재 업고까지는 똑같지만 튀어가 아니라 뛰어()’네요.

튀어의 가볍고 촐랑촐랑한 뉘앙스가 전달되지 못한 건 조금 아쉽습니다.

직역을 하다 못해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쓴 경우도 있어요.

바로 ‘아저씨’인데요.

오지상

 

사실 한국어 아저씨와 일본어 오지상(おじさん)’은 의미도, 뉘앙스도, 이미지도

거의 똑같은 단어인데 굳이 아조시(アジョシ)’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아무래도 탈아저씨, 탈오지상인 원빈 배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 한국어 제목을 최대한 직역한 후 부제를 붙이는 경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차지 않는 방법입니다.

굳이?’ 하는 생각이 너무 들거든요.

부제를 표시할 때 자주 보이는 ‘~’가 느닷없이 엘레강스하기도 하고요.

일타 스캔들 ~사랑은 특훈 코스로~   (아악! 그만!)

 

전 세계는 물론 일본에서도 큰 화제가 된 기생충’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부제가 ‘반지하의 가족(半地下の家族)’이네요.

제목을 결정한 분이 영화에 등장하는 반지하라는 공간이 너무 인상적이셨나 봐요.

저는 대단한 사족이라고 생각하지만요.

‘~’ 기호가 없는 건 그나마 다행입니다.

('~'는 주로 로맨스 장르에 붙이는 듯합니다.)

 

세 번째, 아예 다른 제목을 붙이는 경우

자료를 찾으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지는 케이스였습니다.

그래서 예시도 가장 많이 찾았습니다.

새로 붙은 제목들을 보면서 그럴 만하고, 그럴 싸하다싶더군요.

 

먼저 소개드릴 영화는 부산행’입니다.

일본어 제목을 직역해 보면 ‘신 감염, 파이널 익스프레스’입니다.

전혀 다른 영화 같지만 '부산행'

 

부산이라는 지명이 이제는 일본에서도 충분히 인지도가 있으니

영어 제목이 ‘Train to Busan’이듯 釜山行(부산행)’로 했어도 좋았을 듯해요.

하지만 부산행이라는 제목만으로는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만약 드라마 도깨비가 먼저 나왔더라면

이 영화의 제목은 그대로 부산행이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공유 배우의 티켓 파워로 충분히 흥행이 될 테니까요.

 

'옷장'으로 '스릴러'를 강조한 '장화, 홍련'

그리고 ‘장화, 홍련’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고 듣기만 해도 줄거리의 얼개가 떠오르기 때문에

정말 잘 지은 제목이지만

번역을 하려면 골치가 아픕니다.

어디 책에라도 등장했다면 주석이라도 달겠는데 이건 영화 제목인걸요.

그래서 원제를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제목을 달았습니다.

바로 ‘箪笥(탄스)’, 우리말로 하면 ‘옷장‧서랍장’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영화 내용상 옷장이 특별한 공간이기 때문에 선택한 제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 함축적이라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화, 홍련에서 오는 아련하고 애잔한 정서를 전달하지 못해 아쉽지만요.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마지막으로 이번 조사를 통해 저 혼자 선정한 워스트 제목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바로 요즘 일본을 달구고 있는 채종협 배우의 ‘사장님을 잠금해제’라는 드라마인데요.

‘社長をスマホから救い出せ!~恋の力でロック解除’

직역하면 ‘사장님을 스마트폰에서 구하라! ~사랑의 힘으로 잠금해제’입니다.

간략하고 재치 넘치는 원제가 이렇게 장황해지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 기호까지 더해져 완벽한 느낌?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는 빵 터지기가 목적이었는데

생각보다 잔잔한 웃음에 그쳐서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제목 번역의 어려움과 정서의 차이가 느껴져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기회가 되면 좀 더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럼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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